각진 곳이 어느 곳 보다 먼저 닳아야 하는걸까 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구가 동그랗듯이
모든 자연으로 부터 물려받은 것들은 어느 곳에서도 각지고 반듯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손 혹은 기계에 거친 것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집 건물 문 책상 창문 책 등
모든 것들은 각져있고,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모든걸 각으로 네모난 세상으로 비쳐진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틀을 만들어 왔을까
합리적과 효율적인 것들에 의한걸까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닳고 만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들이라해도 모서리만큼은 어느 곳보다 먼저 닳게 되있다.
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신은 지구를 들었다 났다하면서
바로 이 네모난 지구를 흔들때
우리는 각자 여기저기 여러면에 붙게된다.
중앙에 있는 자
모서리에 있는 자
천장과 바닥에 있는 등등
여기에 나타난 캐릭터는 뾰족한 모서리에 위치하게 된다.
물론 선택권이란건 없이 운명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각진 나는 어느곳보다 왜 먼저 닳아야 하는가 라고
/
닳음 wear out의 주제를 아주 예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걸 처음으로 작은 그룹전 전시 한점에 담아보았다.
사실 노래의 가사에 영향을 얻고서 떠오른 아이디어 인데,
radiohead - fake plastic tree
여기에서 wears me out 닳아 없어지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잠시 설명하자면
중국산 가짜 고무 행성아래
각각의 연인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들에서 허술한 중국제 처럼 다들 닳아서 없어지는데,
어느날 내앞에 진짜처럼 보이는자가 나타났을때 천정을 뚫고 나갈정도로 참을 수 없을정도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허술한 나도 결국 그들처럼 닳아서 없어진다.
나는 여기에서 '닳다'라는 것만 인용해봤다.
캔버스에 그린 아크릴화에서는 네모들을 그렸다.
그리고 모서리에는 약간의 붉은 색을 맴돌게 했는데
그건 피멍같은 상처이다.
네모안에는 파스텔톤의 약간의 온화한 색들을 넣었는데,
그건 인간 내면의 따뜻한 색들이다.
하지만 그안에만 그렇고 나머지 모든것들은 모두 차갑고 무채색이다.
우리 원래 자체는 그렇지 않은데, 스스로를 네모로 각지게 만들고 그리고 스스로가 모서리에 흉터를 내고있다.
그리고 학교와 아파트 회사 지갑조차 네모들로 표현
캔버스를 두개로 겹쳐서 모서리 면을 만들어 냈고
모서리 사이에 겁에 질린 이 캐릭터 앞에는 투명한 아크릴로 막혀있다.
대인관계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방어 영역이면서 그안에 네모의 낙서들은
네모들로 바라본다는걸 표현했다.
그리고 그위에 우리가 바라보는 둥글지 않은
바로 네모난 지구가 있다.
세상을 배우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바라보게 되는건 아닐까 한다.
mana base 인사동
9명의 국내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각자 작품 한점씩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events/894903127283378/